조영남 with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박상현) 콘서트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여전히 이웃집 괴짜아저씨 같은 그에게는 나이를 초월하는 뭔가가 있다. 재미있게 살자는 `재미즘`을 신봉하는 `재미스트`이며, 노력보다 재수가 중요하다는 등의 `재수교` 신자라고 자신을 규정한다. 서울대 음대 재학중이던 1969년 톰존스의 번안곡 `딜라일라`로 공식 데뷔한 이후 성악 발성을 바탕으로 한 풍성한 가창력으로 `제비`, `화개장터` 등 숱한 히트곡을 낸 가수이며, 화가이자 설치미술가로도 활동영역을 넓혔던 사람. 신문 칼럼을 연재하고 대중미술서를 펴낸 작가이기도 한 그는 천상 `자유인`이다.
노래를 시작한지 42년, 음반을 낸지 40년, 강산을 4번이나 바꾸고도 남을 시간 동안 조영남은 노래를 했다. 단지 가수로서의 노래가 아닌, 인생을 이야기했으며 사회를 노래했고 자유를 노래했다.
진정한 이시대의 철학이 담긴 아티스트... 조영남
"불테 안경"과 화개장터, 그리고 라디오시대
거무튀튀한 양복 커다란 넥타이에 뿔테 안경을 쓴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그리고 잉제는 바퀴달린 신발까지...
또한 `화개장터`를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터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뿔테 안경과 화개장터의 아저씨가 벌써 가수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옆집 아저씨 같은 외모와 푸근한 노래로 우리 곁에 온지 40년...
이번 공연은 가수 조영남의 지난 40년을 돌이켜보며 그가 서울대 음악대학 성악과를 다니던 시절로 돌아가 그가 대학시절 불렀던 오페라 아리아와 "오 솔레미오" 같은 대표적인 이태리 가곡을 듣는 공연이 될 것이다.
조영남 그가 살아온 발자취... 달라일라 이후 40년의 세월... 어릴적 오페라 가수의 꿈을 가지고 살아왔던 순진한 삼다리 청년을 지금의 초대형 가수로 만든 것은 1966년 세시봉의 첫무대였다. 누구나 어려웠던 그 시절 단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시작했던 그 무대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노래를 시작한지 42년. 음반을 낸지 40년.
강산을 4번이나 바꾸고도 남을 시간동안 조영남은 노래를 했다. 단지 가수로서의 노래가 아닌, 인생을 이야기했으며 사회를 노래했고 자유를 노래 했다.
가수? 화가? 방송인? 화수? 그의 그림과 함께하는 공연
1945년생 해동웅이로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
세월따라 몸은 노쇠해졌을지언정 그의 넘치는 활력은 나이와 상관없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듯...
조영남은 ��론 가수로 ��론 화가로, 그리고 ��론 방송인으로 종횡무진 한다. 최근 몇년 동안 가수라는 이미지보다 `괴짜화가`, `솔직한 화가` 그도 아니면 방송인(MC)로 더 유명한 그.
이제 훌륭한 가수뿐만 아닌 대단한 화가이며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