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제왕 베르디… 그의 가곡을 노래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베이스 박종민과 소프라노 양제경이 준비한 프로그램은 오롯이 베르디 가곡뿐이다.
그 동안 국내에서 보아 온 예술가곡 공연이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슈만의 “시인의 사랑”과 “여인의 사랑과 생애”처럼 주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하고 대중적인 작품으로 구성되었다면, 이번 듀오 리사이틀은 오페라 작곡가로 친숙한 베르디의 24개 예술가곡 만으로 채워질 것이다. 베르디가 오페라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 아무리 친숙하고 가까운 작곡가라 하더라도, 그의 가곡만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겠다는 시도는 그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고,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없다면 쉽게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베르디의 가곡은 말러나 쇤베르크, 볼프 등과 같이 조성의 변화나 음악적 논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기 보다, 오히려 오페라를 감상하듯 그만의 선율적인 아름다움과 가사 내용에 무게의 중심을 두고 즐길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베이스 박종민, 그의 가곡에 대한 집념과 사랑
베이스 박종민의 예술가곡에 대한 집념과 사랑은 남다르다. 세계 정상급 오페라극장인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 소속으로 활동 중인 그는 2015년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의 가곡 부문에서 우승할 정도로 가곡 노래에 최상의 기량을 뽐낸다. 특히 이 콩쿠르는 2017년도에 소프라노 조수미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화제가 될 만큼 영국의 방송국 BBC에서 생중계하는 권위적인 대회이다. 그리고 지난해 국내에서 연주한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은 베이스의 풍부한 성량과 기품있는 해석을 바탕으로 깊은 감동을 주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도 그가 종종 연주하는 프로그램으로 2015년에 비엔나 뮤직페라인 홀에서의 리사이틀도 놀라운 집중력으로 호평 받았다.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가 남긴 보석 같은 예술 가곡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 베르디 등이 남긴 음악적 형식은 처음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현대에 와서 다시 연구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대표적인 오페라 이외에도 종교음악과 실내악 등을 작곡하였고, 동시에 피아노 반주의 아리에타, 칸초네, 로만스 같은 작은 가곡도 작곡하였으며 특히 이런 소품들이 작곡가의 음악발전에 상당히 기여했음이 분명하다.
1838년 아직 청년이었던 베르디는 밀라노의 출판사에서 ‘로망스’를 출판하였다. 젊은 베르디는 자신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일에 더욱 열성적이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놀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언제라도 그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베르디의 첫 번째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 백작 오베르토>는 한 해 뒤인 1839년에 작곡되었다.)
19세기 중반에 널리 퍼졌던 이탈리아의 소규모 성악곡을 특징짓는 요소는 작곡가 성향에 따른 다양성과 그것을 향유하려는 애호가 수요의 증가이다. 당시의 오페라 팬들의 대부분이 작은 성악곡을 즐겨 들었기 때문에 이 소품들 역시 신작 오페라 출판권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악보출판사들에 의해 보급되었다. 이런 이유로 소품은 지나치게 어렵지 않은 음악이어야 했고, 음악적이거나 극적인 면의 균형보다는 경제성에 치중된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을 선호했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지는 음악으로 인식되고 값싼 음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당시의 애호가는 <세빌리아의 이발사>, <노르마>,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일 트로바토레> 등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들의 대표적 오페라에 포함된 아리아를 그들의 가곡과 특별한 구분 없이 대하였다. 다만 오페라 아리아의 가사는 오페라 전체의 흐름에 따른 제한을 받았다면, 성악곡은 “입맞춤”, “눈물”, “안녕”, “추억”, “유품” “한숨”, “사랑”등 주로 버림받은 연인의 슬픔이나 고독한 사람들의 애절한 감정, 일상의 분위기 등을 노래하였다.
특히 이런 예술가곡은 전통적인 민속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광과 민속적인 풍물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러 지방에서 불려온 아름다운 민요가 예술가곡의 기본정신인 것이다.
도밍고와 에셴바흐가 인정한 소프라노 양제경의 또 한 번의 도약
소프라노 양제경은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호평을 받으며 “도밍고-카프리츠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 오디션에 발탁되어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오페라 <이피제니> First Priestess역으로 출연하여 세련되고 고급스런 테크닉을 갖춘 연주자로 인정받았으며, 세계적인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션바흐가 지휘하는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피델리오>의 마르?린역으로 공연하여 “그녀는 완숙미 넘치는 음색과 함께 테크닉의 민첩함과 안정성, 표현의 서정성과 진정성으로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양제경은 미국의 안정적인 활동을 보장받은 상황에서 과감히 유럽으로 자리를 옮겨 학업을 마친 후 비엔나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섬세한 곡해석과 우아한 연주력을 지녔다는 평을 받는 그녀이기에 이번 베르디 예술가곡을 노래할 그녀의 노력과 준비에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