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다. 이 의미 있는 숫자를 위한 기념 축제를 코로나와 더불어 힘겹게 마무리한 뒤, 서울시향은 베토벤의 정신을 계승한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교향곡을 탐구한다. 1827년 빈에서 거행된 베토벤 장례식에서 베토벤의 셋방 동기였던 작가 그릴파르처는 추도문을 통해 베토벤의 사망과 더불어 “예술은 끝났다”고 감히 선언해 버렸다. 그릴파르처의 예언대로 후배 작곡가들에게 베토벤은 죽어서도 넘을 수 없는 산이 되었다. 특히 교향곡은 늘 베토벤이라는 유령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었다. 이를 의식한 후배 작곡가들의 시도는 다양하게 분화됐다. 베토벤 사후 그의 이념을 계승했다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반세기를 채운 것은 슈만의 교향곡들이었다. 그중에서도 3번 교향곡 ‘라인’은 베토벤의 영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 뿐 아니라 동시대 작곡가인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의 흔적까지 엿보이는, 포스트 베토벤을 대표하는 교향곡으로 손색이 없다.
공연의 오프닝을 장식할 ‘4개의 바다 간주곡’은 브리튼이 자신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중 바다를 묘사한 장면들을 별도로 추려서 완성시킨 작품이다. 휴지(休止) 없이 이어지는 4편의 음악은 오페라와는 또 다른 콘서트용 작품으로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서울시향이 두 편의 브리튼 작품(일뤼미나시옹, 진혼 교향곡)을 연주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이날 포디엄에 서는 호주 출신 지휘자 니컬러스 카터는 2022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피터 그라임스〉 오페라 풀버전을 지휘할 예정이다.
이어서 연주될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은 아네조피 무터 등 거장들의 신임을 든든히 받고 있는 차세대 스페인 첼리스트 파블로 페란데스 본인의 선곡이다. 브리튼과 쇼스타코비치는 우정이 돈독했던 동시대 음악가들이었다. 서로 다른 전통을 계승한 두 음악가가 나눈 교감을 1부 무대에서 기대해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