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머레이 페라이어 피아노 리사이틀
MURRAY PERAHIA
이 시대 가장 서정적인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머레이 페라이어의 내한공연이 2011년 10월 23일 (일) 오후 2시 30분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된다.
명징한 음색, 음악적 본질을 추구하는 깊이 있는 터치로 건반 위 최고의 음유시인이라 추앙받는 머레이 페라이어는 피아니스트로서는 치명적인 엄지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1991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지독한 재활 훈련과 오랜 연습으로 재기를 준비했고, 2006년 독일 리사이틀을 통해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2007년 미주 첫 복귀 무대를 가졌던 벤쿠버에서는 일명 ‘턱이 빠질 정도의 빠른 스피드’와 ‘더욱더 완벽해진 테크닉’으로 관객과 평단을 놀라게 하였다. 2006년 한국 공연 취소 이후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며 내한 했던 2008년 공연에서는 시종일관 따뜻한 무대 매너와 열정적인 연주로 객석에 큰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고난을 딛고 일어난 세기의 피아니스트
스페인 계 유대인인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1947년 뉴욕에서 태어난 머레이 페라이어는 매네스 음대에서 호르쵸프스키에게 건반악기와 지휘, 작곡을 배웠고 여름 동안에는 말보로에서 루돌프 제르킨과 파블로 카잘스 등과 함께 공부했다. 그는 1972년 제4회 리즈 국제 콩쿠르에서우승하며 본격적인 전문연주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 콩쿠르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당시 페라이어의 스승이었던 호르초프스키가 리즈 콩쿠르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대회 우승자를 등록했다고 하자, 그 소문을 들은 몇몇 경쟁자들이 등록을 취소했다고 한다. 우승 후 페라이어는 세계 곳곳에서 리사이틀을 가지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1990년 그에게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생겼다. 악보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베인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상처가 덧나 항생제를 먹게 되면서 건강이 나빠지게 되었고 1991년에는 그 염증으로 인해 손가락 뼈에 변형이 와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몇 년간 피아노를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긴 치료기간 동안 절망하지 않고 재기를 준비한 그는 1990년대 후반 다시 돌아왔고, 2000년에 출시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은 빌보드 차트(Top 10 Billboard Classical Chart)에 연속 15주나 오르며 음악 애호가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2004년 나은 줄 알았던 손가락 부상이 재발하여 모든 연주 일정을 취소하며 또 한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역시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다시 돌아온 머레이 페라이어. 그는 이 시대 진정한 거장이다.